그런 말이 있다.
"대학에서 학사를 마치면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석사 학위를 따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박사 학위를 따면 자기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식 세계의 무한한 깊이를 이야기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의 한계를 빗댄 것이기도 하다. 투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조금 공부해서 단기 수익을 낸 투자자는 자신이 투자의 귀재라도 된 것인 양 우쭐해하고, 조금 더 나가서 쓴맛을 보고 나면 종잡을 수 없이 절망하고, 조금 더 나가면 자신만 이런 막연한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번듯한 펀드를 운영하는 유명한 펀드매니저는 편안하고 확신에 찬 투자를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바턴 빅스는 모건스탠리에서 30년간 연구 조사와 투자 운용을 지휘한 인물이다. 미국 최고의 투자 전략가로 여러 번 선정된 바 있는 미국 투자계의 명사 중 한 사람이다. 빅스 같은 인물은 항상 확신에 차 있고, 앞선 정보와 연구로 무장되어 있으니까 투자에 대해서 불안감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투자 전문가 세계에서 자신의 심리적 불안감을 드러내는 것은 고객을 유치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므로 좀처럼 그런 고백이나 자료는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빅스는 대단한 일을 했다. 그가 쓴 Hedgehogging 이란 책을 보면 전설적인 한 펀드매니저의 고뇌를 감사하게 관찰할 수 있다. 펀드를 처음 만든 후 고객 자금을 모으기 위해 다니던 시절, 그가 겪은 좌절, 환희, 불안감, 사람들에 대한 단상, 펀드의 첫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전날의 공포, 불면, 몇 년간 탁월한 성적을 낸 펀드매니저에게 찾아오는 나태함, 그로 인한 수익률의 저조함, 이런 것들을 솔직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들로 인한 불안으로 "위장에 구멍이 났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어서 그가 더 위대해진다. 덤으로 그가 교류했던 업계의 펀드 매니저, 애널리스트들과의 일화를 통해서 다른 전문가들의 불완전함과 심리적 불안정, 투자 기술의 수준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인덱스 펀드의 아버지 존 보급에 의하면 1982년부터 16년간 미국 증시에서 주식형 펀드가 21%를 점유했는데, 이 기간 뮤추얼 펀드의 연간 수익은 윌셔 5000 지수(미국 총 주식 시장 지수)로 대표되는 시장 수익의 87%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는 이 결과로부터 시장에서 그냥 단순히 골고루 사는 인덱스 펀드가 해답이라고 결론짓는다. 인덱스 펀드는 실력으로 시장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고 주장하는 효율적 시장 가설 이론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전문가들의 평균적 실력이라는 것이 단순한 시장 상승률을 못 따라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즘도 이 현상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여전히 마찬가지이며, 이 현상을 인간의 약점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하며, 인덱스 펀드의 필요성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기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운용 규모가 1000억 달러 가까운 GMO사의 공동 설립자이자, 시장의 현인 중 한 사람으로 존경받는 제레미 그랜덤은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펀드 매니저들의 문제점 한 가지를 계속 지적해 왔다. 그의 칼럼에서는 이런 내용이 있다.
"투자 비즈니스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실은 투자 행위기 경력 위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프로 투자 비즈니스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돈을 관리하는 에이전트이다. 에이전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인스가 잘 간파한 것처럼, 오로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신은 절대로 독자적인 방법으로 틀려서는 안 된다. 이런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프로 투자자는 다른 프로가 어떻게 하는지에 엄청난 관심을 쏟는다. 대다수는 철저하게 또는 부분적으로 (다른 이들의) 흐름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한다. 이것이 쏠림 현상이나 모멘텀을 초래해서 가격을 정상적인 수준보다 더 위 또는 아래로 밀어붙이게 된다.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것으로 안정적인 GDP 성장 및 같은 속도의 적정 주가 상승과 변덕스러운 주식 시장 사이의 간극이 설명된다. 이 차이는 크다. 연간 GDP 성장과 연간 적정 주가 변화는 전체 2/3 기간 동안 장기 추세에서 1%를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시장가는 전체 2/3 기간 동안 장기 추세에서 19% 이내에 있다. 즉, 시장은 정당화될 수 있는 수준의 19배나 더 크게 움직인다.
시장에 불합리성을 제공하는 주체는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프로 투자자들도 포함된다. 개인들은 불합리하게 행동해서 꼭대기에서 사고 바닥에서 파는 반면, 기관이나 외국인은 이와 반대로 행동해서 이익을 낸다고 하는데, 사실 이는 물정 모르는 이야기이다. 프로 투자자들도 엄청난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제한되어 있고 감정적인 가중치까지 더해지니 감정 없이 투자하는 기계에 비해 많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좋은 수익을 내려면 감정적 가중치에 의한 결론이 왜곡되기 힘들 정도로 단순한 모델을 고수하고 시간의 횡포, 유혹과 잡음의 횡포를 견디며 투자하는 것이 그나마 시장 수익률을 이길 수 있는 현명한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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